시시콜콜 내 얘기들

우동 한 그릇(퍼옴)

향기향 2011. 2. 14. 14:14

2011-02-13 (20:39:56) Modify Delete

 


   우동 한그릇


  저자: 구리 료헤이
  역자: 최영혁
  출판사: 청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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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동 한그릇

  해마다 섣달 그믐이 되면 우동집으로서는 일년중 가장 바쁠 때이다.
  북해정도 이날만은 아침부터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보통 때는 밤 12시쯤이 되어도 거리가 번잡한데 이날만큼은 밤이 깊어질수록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10시가 넘자 북해정의 손님도
뜸해졌다.
  사람들은 좋지만 무뚝뚝한 주인보다 오히려 단골 손님으로부터 주인 아줌마라고
불리우고 있는 그의 아내는 분주했던 하루의 답례로 임시 종업원에게 특별 상여금
주머니와 선물로 국수를 들려서 막 돌려보낸 참이었다.
  마지막 손님이 가게를 막 나갔을 때, 슬슬 문앞의 옥호막을 거둘까 하고 있던
참에, 출입문이 드르륵, 하고 힘없이 열리더니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6세와 7세 정도의 사내애들은  새로 준비한 듯한 트레이닝 차림이고,
여자는 계절이 지난 체크 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라고 맞이하는 여주인에게, 그 여자는 머뭇머뭇 말했다.
  "저 우동 일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들이 걱정스런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네 네. 자, 이쪽으로."
  난로 곁의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여주인은 주방안을 향해,
  "우동 1인분!" 하고 소리친다.
  주문을 받은 주인은 잠깐 일행의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면서,
  "예!" 하고 대답하고, 삶지않은 1인분의 우동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덩어리를 더
넣어 삶는다.
  둥근 우동 한 덩어리가 일인분의 양이다. 손님과 아내에게 눈치 채이지 않은
주인의 서비스로 수북한 분량의 우동이 삶아진다.
  이윽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먹음직스러운 우동 그릇이 테이블에 나왔다.
  우동 그릇을 가운데에 두고, 이마를 맞대고 먹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카운터 있는 곳까지 희미하게 들린다.
  "맛있네요."라는 형의 목소리.
  "엄마도 잡수세요." 하며 한 가닥의 국수를 집어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가는 동생.
  이윽고 다 먹자 150엔의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라고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모자에게,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주인 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했다.
  신년을 맞이했던 북해정은 변함없이 바쁜 나날 속에서 한해를 보내고, 다시 12월
31일을 맞이했다.
  지난해 이상으로 몹시 바쁜 하루를 끝내고 10시를 막 넘긴 참이어서 가게를
닫으려고 할 때 드르득, 하고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여주인은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체크 무늬의 반코트를 보고, 일년 전 섣달
그믐날의 마지막 솜님임을 알아보았다.
  "저 우동 일인분입니다만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여주인은 작년과 같은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우동 일인분!" 라고 주인은 대답하면서 막 꺼버린 화덕에 불을 붙인다.
  "저 여보, 서비스로 3인분 줍시다."
  조용히 귀엣말을 하는 여주인에게,
  "안돼요. 그런 일을 하면 도리어 거북하게 여길 거요."
라고 말하면서 님편은 둥근 우동 하나 반을 삶는다.
  "여보,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좋은 구석이 있구료."
  미소를 머금은 아내에 대해, 변함없이 입을 다물고 삶아진 우동을 그릇에 담는
주인이다.
  테이블 위의 한 그릇의 우동을 둘러싼 세 모자의 얘기 소리가 카운터 안과 바깥의
두 사람에게 들려온다.
  "으 맛있어요"
  "올해도 북해정의 우동을 먹게 되네요?"
  "내년에도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다 먹고 나서, 150엔을 지불하고 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에 주인 내외는,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날 수십번 되풀이했던 인사말로 전송한다.
  그 다음해의 섯달 그믐날 밤은 여느해보다 더욱 장사가 번성하는 중에 맞게
되었다. 북해정의 주인과 여주인은 누가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안절 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10시를 넘긴 참이어서 종업원을 귀가시킨 주인은, 벽에 붙어 있는 메뉴표를
차례차례 뒤집었다. 금년 여름에 값을 올려 '우동 200엔'이라고 쒸어져 있던
메뉴표가 150엔으로 둔갑하고 있었다.
  2번 테이블 위에는 이미 30분 전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져 있다.
  10시반이 되어, 가게 안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기나 한
것처럼, 모자 세사람이 들어왔다.
  형은 중학생 교복,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고 있던 점퍼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엄마는 여전히 색이
바랜 체크 무늬 반코트 차림 그대로였다.
  "어서 오세요!"
라고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여주인에게, 엄마는 조심조심 말한다.
  "저 우동 이인분인데도 괜찮겠죠?"
  "넷 어서 어서. 자 이쪽으로."
라며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여주인은 거기 있던 '예약석'이란 팻말을 슬그머니
감추고 카운터를 향해서 소리친다.
  "우동 이인분!"
  그걸 받아,
  "우동 이인분!"
이라고 답한 주인은 둥근 우동 세 덩어리를 뜨거운 국물 속에 집어 넣었다.
  두 그릇의 우동을 함께 먹는 세 모자의 밝은 목소리가 들리고, 이야기 소리도
활기가 있음이 느껴졌다.
  카운터 안에서, 무심코 눈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짓는 여주인과, 예의 무뚝뚝한
채로 응응,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주인이다.
  "형아야, 그리고 쥰아 오늘은 너희 둘에게 엄마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실은,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켰던 사고로,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잖니, 보험으로도 지불할수 없었던 만큼을, 매월 5만엔씩 계속 지급하고
있었단다."
  "음 알고 있어요." 라고 형이 대답한다.
  여주인과 주인은 몸도 꼼짝 않고 가만히 듣고 있다.
  "지불 약속은 내년 3월까지로 되어 있었지만, 실은 오늘 전부 끝낼 수 있었단다."
  "넷! 정말이에요? 엄마!"
  "그래, 정말이지. 형아는 신문 배달을 열심히 해주었고, 쥰이 장보기와 저녁
준비를 매일 해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던 거란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일을 한 더택에 회사로부터 특별 수당을 받았단다. 그것으로 지불을 모두
끝마칠 수 있었던 거야."
  "엄마! 형! 잘됐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저녁 식사 준비는 내가 할 거^36^예요."
  "나도 신문 배달 계속 할래요. 쥰이하고 나, 엄마한테 숨기고 있는 것이
있어요.그것은요 11월 첫째 일요일, 학교로부터 쥰이의 수업 찬관을 하라는
편지가 왔었어요. 그때 쥰은 이미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아 놓고 있었지만요.
  쥰이 쓴 작품이 북해도의 대표로 뽑혀, 전국 콩쿠르에 출품하게 되어서 수업
참관일에 이 작문을 쥰이 낭독하게 되었대요.
  선생님이 주신 편지를 엄마에게 보여드리면 무리를 해서라도 회사를 쉬실
걸 알기 때문에 쥰이 그만 그걸 감췄어요. 그걸 쥰의 친구들한테 듣고 내가
참과일에 갔었어요.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서?"
  "선생님께서, 너는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제목으로, 전원에게
작문을 쓰게 하셨는데, 쥰은 '우동 한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써서 냈대요. 지금부터
그 작문을 읽어드릴께요.
  '우동 한그릇'이라는 제목만 듣고, 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사실은 쥰 녀석 무슨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지! 하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었죠.
  작문은 아빠가 교통 사고로 돌아가셔서 많은 빚을 남겼다는 것, 엄마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 내가 조간 석간 신문을 배달하고
있었다는 것 등 전부 씌여 있었어요.
  그러고서 12월 31일 밤 셋이서 먹은 한 그릇의 우동이 그렇게 맛있었다는
것 셋이서 다만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았는데도 우동집 아저씨와 아줌마는,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큰 소리로 말해 주신일.
  그 목소리는^5,5,5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요.
  그래서 쥰은, 어른이 되면, 손님에게 '힘내라!' '행복해라!'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할수 있는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었어요.
  카운터 안쪽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을 주인과 여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카운터 깊숙이에 웅크린 두 사람은, 한 장의 수건 끝을 서로 잡이당길 듯이
붙잡고, 참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작문 읽기를 끝마쳤을 때 선생님이, 쥰의 형이 어머니를 대신해서 와주었으니까,
여기에서 인사를 해 달라고 해서"
  "그래서 형아는 어떻게 했지?"
  "갑자기 요청받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말이 안 나왔지만 여러분, 쥰과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습니다 동생은 매일 져녁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동생이 '우동 한그릇'이라고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처음에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펴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고 있는 동생을 보고
있는 사이에, 한 그릇의 우동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부끄러운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때 한 그릇의 우둥을 시켜주신 어머니의 용기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쥰과 친하게 지내 주세요, 라고 말했어요.
  차분하게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웃다가 넘어질 듯이 두드리기도 하고,
작년까지와는 아주달라진 즐거운 그믐날 밤의 광경이었다.
  우동을 다 먹고 300엔을 내며 '잘 먹었습니다.'라고 깊이깊이 머리를 숙이며
나가는 세 사람을, 주인과 여주인은 일년을 마무리하는 커다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전송했다.
  다시 일년이 지났다.
  북해정에서는, 밤 9시가 지나서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을 2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기다렸지만, 세 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또 다음 헤에도, 2번 테이블을 비우고 기다렸지만, 세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북해정은 장사가 번성하여, 가게 내부 수리르 하게 되자, 테이블이랑 의자도 새로
바꾸었지만 그 2번 테이블만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새 테이블이 나란히 있는 가운데서, 단 하나 낡은 테이블이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것이 여기에?'하고 의아스러워 하는 손님에게, 주인과 여주인은 '우동
한그릇'의 일을 이야기하고, 이 테이블을 보고서 자신들의 자극제로 하고 있다, 어느
날인가 그 세 사람의 손님이 와줄지도 모른다. 그때 이 테이블로 맞이하고 싶다,
라고 설명하곤 했다.
  그 이야기는, '행복의 테이블'로써, 이 손님에게서 저 손님에게로 전해졌다. 일부러
멀리에서 찾아와 우동을 먹고 가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 테이블이 빌때까지
기다렸다가 주문을 하는 젊은 커플도 있어 상당한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고나서 또, 수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해 섣달 그믐의 일이다.
  북해정에서는, 같은 거리의 상점회 회원이며 가족처럼 사귀고 있는 이웃들이
각자의 가게를 닫고 모여들고 있었다.
  북해정에서 섣달 그믐의 풍습인 해넘기기 우동을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동료들과 그 가족이 모여 가까운 신사에 그해의 첫 참배를 가는 것이
5,6년 전부터의 관례가 되어 있었다.
  그날 밤도 9시 반이 지나 생선가게 부부가 생선회를 가득 담은 큰 접시를 양손에
들고 들어온 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평상시 동료 30여명이 술이랑 안주를 손에
들고 차례차례 모여들어 가게 안의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
  2번 테이블의 유래를 그들도 알고 있다. 입으로 말은 안 해도 아마, 금년에도 빈
채로 신년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은 비워둔 채
비좁은 자리에 전원이 저금씩 몸을 좁혀 앉아 늦게 오는 동료를 맞이했다.
  우동을 먹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서로 가져온 요리에 손을 뻗히는 사람,
카운터 안에 들어가 돕고 있는사람, 멋대로 냉장고를 열고 뭔가 꺼내고 있는 사람
등등으로 떠들썩했다.
  바겐세일 이야기, 해수욕장에서의 에피소드, 손자가 태어난 이야기 등, 번잡함이
절정에 달한 10시 반이 지났을 때, 입구의 문이 드르득, 하고 열렸다.
  몇사람인가의 시선이 입구로 향하며 동시에 그들은 이야기를 멈추었다.
  오버코트를 손에 든 정장 슈트 차림의 두 청년이 들어왔다. 다시 이야기가
이어지고 시끄러워졌다. 여주인이 '공교롭게 만원이어서'라며 거절 했을 때
화복(일본옷) 차림의 부인이 깊이 머리를 숙이며 들어와서, 두 청년 사이에 섰다.
  가게 안에 있는 모두가 침을 삼키며 귀를 기울인다.
  화복을 입은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저 우동 3인분입니다만 괜찮겠죠?"
  그 말을 들은 여주인은 얼굴색이 변했다. 십수년의 세월을 순십간에 밀어 젖히고,
그 날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이 눈앞에 세 사람과 겹쳐진다.
  카운터 안에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주인과,방금 들어온 세 사람을
번갈아 가리키면서,
  "저 저 여보!"
하고 당황해 하고 있는 여주인에게 청넌 중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14년 전 섣달 그믐날 밤, 모자 셋이서 일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후, 우리는 외가가 있는 시가현으로 이사했습니다. 저는 금년, 의사 국가 시험에
합격하여 교오또의 대학병원에서 소아과의 병아리 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만,
내년 4월부터 삿뽀르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 인사도 하고 아버님 묘에도 들를 겸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우동집
주인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교오또의 은행에 다니는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의
인생 가운데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와 셋이서
삿뽀로의 북해정을 찾이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던 여주인과 주인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넘쳐 흘렀다.
  입구에서 가운데 테이블에 진을 치고 있던 야채 가게 주인이, 우동을 입에 머금은
채 있다가 그대로 꿀꺽하고 삼키며 일어나,
  "여봐요 여주인 아줌마! 뭐하고 있어요! 십년간 이날을 위해 준비해 놓고 기다린,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이잖아요, 어서 안내해요. 안내를!"
  야채 가게 주인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린 주인은,
  "잘 오셨어요 자 어서요 여보! 2번 테이블 우동 3인분!"
  무뚝뚝한 얼굴을 눈물로 적신 주인,
  "네엣! 우동 3인분!"
  예기치 않은 환성과 박수가 터지는 가게 밖에서는 조금 전까지 흩날리던 눈발도
그치고, 갓 내린 눈에 반사되어 창문의 빛에 비친 '북해정'이라고 쓰인 옥호막이
한발 앞서 불어제치는 정월의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마지막 손님

  임종을 앞둔 어머니의 소망을 들어드리기 위해 눈속에 먼길을 달려온 마지막 손님
이미 과자점 문은 내려진 뒤였지만 과자점의 소녀는 오던 길을 되돌아와 정성스레
과자를 담습니다.
  간절한 염원에도 그분은 결국 눈감았어도 오래도록 따뜻한 마음은 머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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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손님

  개이꼬의 출근길은 언제나 가볍고 상쾌하다.
  몇대째 설어왔는지 어림하기 힘들 만큼 오래 된 주택들 중 사또라는 문패가 붙어
있는 집 역시 무척 낡은 집이지만 게이꼬의 명랑한 목소리와 수수하면서도 청순한
옷차림 때문인지 전혀 우중충해 보이지가 않는다.
  "다녀오겠습니다."
  집을 나섯 큰길까지 가는 동안 게이는 아는 얼굴을 만날 때마다 상냥하게 인사를
한다.
  "안녕 하세요?"
  "아, 안녕, 게이꼬양, 이제 나가요?"
  "네"
  한겨울로 접어든 차가운 바람이 게이꼬의 낡은 옷 속으로 파고들지만 그녀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힘차게 걸어간다.
  게이꼬는 오오쓰의 중삼가에 있는 과자점 춘푸암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 그녀의 나이는 열아홉, 벌써 4년째 이 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종업원이라야 겨우 열다섯 명 정도의 규모인 춘추암에서는 매일 아침 사원
식당에서 조례를 하는데  이 조례 시간에는 '한마디 제안'이라는 순서가 있다.
  그날 아침 총무부장은 게이꼬를 지명하여 한마디 제안을 해 보도록 권유했다.
  게이꼬는 수줍은 듯이 앞으로 나와서 고개를 숙였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무래도 말문을 열기가 쑥스러웠지만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답례를 하자
게이꼬는 용기를 얻어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얼마 전 어느 손님으로부터 한권의 시집을 받았습니다. 이 시집은 알기
쉬운 표현 으로 상인의 생활 자세를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구절입니다.

  조그만 가게임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 조그만 당신의 가게에
  사람 마음의 아름다움을
  가득 채우자.

  모두들 진지한 표정으로 게이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게이꼬는 더욱
상기된 모습으로 말을 계속했다.
  "저는 단숨에 그 시집을 읽고 나서 우리가 일하는 장사의 세계는 이처럼 멋있는
세계이구나 하고 겨우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멋진 세게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왜 이 시인과 같이 멋지게 보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나날이 일에만 쫓겨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과, 팔고 사는데만
정신이 팔려 진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은 탓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에서는 똑같은 일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따라 멋진
일이기도 하고 비참해지기도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상입니다.
  끝나고 돌아가려 하는 게이꼬에게 나시다 사장이 박수를 치며 앞으로 나왔다.
  "게이꼬양, 고맙습니다. 수고했어요 좋운 공부를 했어요. 정말, 방금
게이꼬양이 말한 대로^36^예요 그런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나를 포함해서
모두들 지금까지 여유가 너무 없었어요
  조금만 시간이 나면, 손님에게 많이 팔아라, 팔아라 하고 안달이 나도록
밀어붙였던 게 틀림없어요 그렇게 되면, 누가 봐도 결코 좋아 보이지는
않겠죠.
  그렇지만, 손님에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대응한다는거, 어렵죠 매상도
올리지 않으면 안되니 매우 모순을 띠고 있죠.
  다만, 우리 회사처럼 상품 자체의 구매력이 그다지 없는 조그만 가게에서 가게의
매력을 만들려고 생각 한다면 사람의 매력 그것밖에 없다고 난 생각합니다. 여러분
모두 이 문제를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조례가 끝나고 명란한 모습의 게이꼬가 자신이 근무하는 지점으로 가고 있는데
춘추암의 지배인 가야마가 뒤따라와서,
  "게이꼬양, 아까 그 시집, 나도 한 번 읽고 싶은데 누구 시집이죠?"
하고 물었다.
  게이꼬는 가야마의 짐을 나누어 들려고 하지만 그는 괜찮다는 몸짓을 한다.
  "오까다 데쓰라는 분의 시집입니다."
  "누구한데 받은 거죠?"
  "저도 잘 모르는 분이에요. 1년에 두세번 정도 오시는 손님인걸요. 뭐하시는
분인지 모르겠어요. 그걸 받았을 때 성함을 여쭈어보았지만
  '아녜요. 부담스러워 할 것 없어요.'라며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교오또에
일이 있어서요, 오오쓰의 아가씨가 문득 생각나서 가져온 거^36^예요.'
라고 말씀하셨어요. 도꾜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좋는 손님이군요. 고맙다고 말하는 진정한 의미가 바로 이런거죠.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는 거죠. 감사해야겠네요."
  "그럼요. 있기가 어려운 일이 일어났을 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죠."
  "그렇습니까 그 손님, 세상에 많은 과자점이 있는 데도 일부러 우리 가게에
와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텐데요. 더욱 감사해야겠네요. 그분, 또 오시면,
지배인님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춘추암은 그다지 큰 가게는 아니다.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중후한 감이 있고, 모든
비품 등이 산뜻하게 정돈되어 있다. 손님이 기다리는 장소에 의자가 놓여 있어
여유를 느끼게 한다.
  할머니 손님 한 분이 게이꼬와 같이 일하는 나미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 과자를 좋아했었지. 오늘은 영감이 돌아가신 날 이어서, 좋아하셨던 과자를
사고 싶어서요."
  그렇습니까. 할아버지 돌아가신 지가 벌써 3년이나 됐군요. 정말 빠르군요. 몇
개나 싸드릴까요?
  "열다섯개 줘요,"
  "알았습니다."
  나미꼬가 과자를 포장하는 동안 게이꼬는 안쪽에서 차를 가져왔다.
  "할머니, 어서 오세요. 고맙습니다. 추우실 텐데 따끈한 차 한모금 드세요"
  "게이꼬양, 언제나 미안해요. 아차, 손녀 미도리가 게이꼬양한테 예쁜 종이학을
받았다고 하던데?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렇지만, 게이꼬양, 아주 잘 접었던데.
솜씨가 좋아요. 그럴 시간이 없을텐데 언제 만들었지?"
  "가게에 손님이 없을 때 접기도 하고, 집에서 쉬는 날 접기도 하고요"
  "우리 미도리, 아가씨를 친한 친구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아직 소학생인
주제에^55,5,5^"
  "그래도 괜찮아요. 귀여운걸요. 친구로서 도움이 된다면 기쁜걸요."
  나미꼬는 자기 가방에서 머플러를 꺼내, 손으로 부벼 따뜻해 진 것을 확인하고는
과자를 싸서 자신의 가슴에 안고 갖고 온다.
  "기다리시게 했습니다. 주문하신 과자 열다섯개 넣어 왔습니다. 할머니, 밖이
추우니까 제 머플러로 싸서 넣어 드릴께요"
  그녀는 가슴에서 과자를 싼 머플러를 꺼내 건네 준다.
  "아 따뜻해요 기분이 좋군, 고마워요 아가씨들 젊은데도 마음 쓰는
것이 보통이 아니에요. 얼마지요?"
  안쪽에서 꽃을 준비하고 있던 유끼꼬도 함께 밖으로 나온다.
  "네, 천오백엔입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한산한 가게 앞에서 추위를 아랑곳 않고 일동은 나란히 서서
언제까지고 전송하고 있다.
  유끼꼬가 준비한 꽃을 현관에 걸고 있을 때 가야마가 들어오다가 말을 건다.
  "우 추워, 오늘은 몹시 추우니 조용하군. 참, 유끼꼬양 그 시집 좀 읽어
봐요"
  유끼꼬는 계속 꽃을 만지면서,
  "뭐라고 하셨죠? 시집이라니요?"
  "음, 유끼꼬는 당직이어서 조례에 나오지 않았지. 오늘, 게이꼬양이 '한마디
제안'에서 시집 이야기를 했어요. 항상 게이꼬의 이야기는 예리하지만, 오늘은 특히
게이꼬양다워서 좋았어요. 그래서"
  그때 지배인의 친구인 나까가와가 자동차를 타고지나가다가 차를 멈추고 창밖으로
소리친다.
  "안녕, 가야마!"
  "여! 안녕하신가, 오랜만이야."
  "오늘은 게이꼬양 있나?"
  유끼꼬는 명랑하게 나까가와의 반응을 살피면서 야유조로 말했다.
  "선배님!아니 나까가와씨. 당신은 지배인님 친구라는 것을 핑계로 늘 가게에
오시지만, 한 번도 과자를 사시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난 과자 좋아하지 않아."
  "그렇습니까 그러면서도 게이꼬양이 내놓는 차와 과자는 잘도 잡수시데요."
  "게이꼬양의 것은 예외요."
  "말끝마다 그저 게이꼬양, 게이꼬양, 선배님, 도대체 게이꼬양을 어떻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죠?"
  "유끼꼬양에게는 당할 수가 없군. 아침부터 사람의 비꼬지 말아요. 아무 것도
특별한 속셈은 없어요. 게이꼬양이 있으면 차라도 한잔 얻어 마실까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들른 것뿐이니까."
  이때 가야마가 바쁘지 않으면 들어오라고 권하자 나까가와는 자동차를 주차시켜
놓고 들어오려고 했다.
  나미꼬는 앞문을 열면서 안쪽을 향해 안내 방송하는 어조로,
  "게이꼬양, 면회입니다."
하고 장난기 섞어 외쳤다.
  "네 지금 곧"
  게이꼬가 급히 나온다.
  "아니, 아무것도 없잖아요"
  나미꼬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후후후 미안,밖에 미스터 엘리트인 나까가와씨가 왔어요."
  게이꼬는 의아스러운 얼굴을 하고 물었다.
  "나까가와씨?"
  "게이꼬양이 있으면 들어오겠대요."
  나까가와씨가 들어와서 쑥스러움을 감추면서,
  "안녕 게이꼬양. 잘 있었소?"
하고 인사를 건네자 게이꼬도,
  "안녕하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하고 답례를 했다.
  나까가와씨는 손님 의자에 앉았다.
  "그간 못 만났군요. 회사 연수 때문에 이즈에 출장 다녀왔어요."
  유끼꼬가 아직도 꽃을 손보느라고 서서 일을 하며,
  "선배님, 이즈의 선물은 나중에 게이꼬의 집으로 속달로 보내겠죠?"
하고 비꼬자 나까가와는 큰소리로 말한다.
  "또 유끼꼬양은 사람을 곧잘 괴롭히는군요 학대는 사회악이에요."
  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 선전문귀를 쓰면서 가야마가 물었다.
  "며칠간 다녀왔나?"
  "1주일간 억지로 다녀왔어."
  "억지로라니, 그것도 일의 연장이지."
  "그거야 그렇지만."
  "한마디로 종합력이고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지. 자네와 이 회사 너무
급성장한 거야. 사람도 키우지 않고 규모만 크게 되었지."
  "무슨 의미지, 그건 금세 자네가 말하는 대로일지도 몰라. 세일즈가
약하니까, 시스템화하기도 하고, 매뉴얼로 움직이려고도 하지. 그것이 이런 발상
전환이 잘 안되는 시대가 되면 혼란에 빠져 버려요. 그래서 우리를 옥죄어 놓고
매뉴얼을 검토시킨 거지."
  유끼꼬가 말을 가로챘다.
  "뭐죠, 그 매뉴얼이라는 거?"
  나까가와는 다소 빈정대듯이 대꾸했다.
  "평소 그렇게도 아는 척하고 참견 잘하면서 그래, 매뉴얼도 몰라요 이
가게엔 접객 매뉴얼도 없나?"
  "그런 것 없어요. 과자 파는데, 매뉴얼이고 애니멀이고 있을 필요가 없죠. 그렇죠.
지배인님."
  가야마는 싱긋 웃으며 나까가와 옆으로 와서 앉는다.
  "글세, 우리 같을 작은 가게는 그런 것 없어도 돼요. 베테랑인 유끼꼬양에서부터
가장 신인인 게이꼬양도 4년이나 되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기 충분하지."
  나까가와는 가야마의 말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자네, 잘도 그렇게 맘 편할 소릴 하네. 매뉴얼이라고 하면, 그 기업의 능력을
결집한 기술의 하나야 그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정당화하다니"
  이때 밖에서 손님들이 한 사람 두 사람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
  "어이 추워!"
  목을 움추리며 손님들이 들어오자 가야마도 일어나고 유끼꼬는 손을 멈추고,
  "어서 오세요. 고맙습니다."
하고 일제히 허리를 굽힌다.
  게이꼬는 나까가와에게 차를 갖고 가다가 두 사람의 부인에게 다가가며,
  "어서 오세요, 추우신데 이렇게 오셨군요. 고맙습니다."
하고 깍듯이 인사를 했다.
  "아, 게이꼬양, 오랜만이에요."
  "친구분도 여전히 건강하시겠죠."
  "항상 그렇지. 답장 빨리해 줘서 고마워요. 도움이 됐어요 그런데 연하장
누구의 시죠? 너무 멋있어서 내 친구도 칭찬을 하던걸."
  "부끄럽습니다."
  게이꼬는 수줍은 듯이 말했다.
  "항상 가져가는 세트로 두 개 부탁해요."
  부인은 주문을 하고 나서 가야마에게 말했다.
  "지배인, 오늘은 나와 친한 친구를 데리고 왔어요."
  가야마는 앞으로 다가서며,
  "지배인 가야마입니다."
  소개받은 부인 쪽이 더 품위있고 조용한 듯이 보인다.
  "이 친구가 너무 이 가게를 칭찬해서, 마침내 나도 와 보고 싶어졌어요. 이
춘추암의 좋은 선전원이죠 호호호"
  손님들이 돌아가자 시집을 뒤적이고 있던 나까가와씨가 가야마에게 불쑥 묻는다.
  "자네, 이런 것 읽는가?"
  "읽으려고 빌렸지."
  "아직, 이런 책이 팔리나. 속을 모르겠군, 이런 책 사는 사람 장사란 이
책처럼 안이한 것이 아니고 먹히냐 먹히느냐의 사나이 사투인데. 오호, 이것
봐라."

  번성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야 할 것은,
  오늘도 또
  사람의 마음을
  아름다움을
  우리 장사의 모습으로
  하고 싶은 것이다.

  나까가와씨의 냉소적인 목소리는 기분에 들떠 점차 커지고 있다.
  "너무 안이하고 마치 소녀 취향적인 로맨티시즘이군. 가게가 번성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상인의 기쁨이 있단 말인가? 번성이라는 법적의 확대 성장이야말로,
더욱이 일하는 상인의 앞날에 희망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이런 정서적인
생활 방식이 아니고 최대한으로 이성을 발휘한 투쟁이 필요하지. 자본력과 조직력을
무기로 하는"
  가야마도 점차 흥분하여,
  "그것은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샐러리맨 집단인 자네들의 생각이란
무엇이든 금방 결과를 얻으려 하지. 이 시는 번성이라는 결과에 이르는 과정의 시가
아닐까. 자네는 무엇이든 자신의 주장만을 타인에게 강요하는군."
  나까가와는 물러나지 않고 흥분해서,
  "손님이란 대개 멋대로야. 그런 멋대로인 자기 본위의 손님을 어떻게 일일이
만족시킬 수 있단 말인가. 정서파는 엘리트가 될 수 없어."
  "그 멋대로인 손님에게 부탁도 받지 않은 것을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고 팔려고
하고 있군. 그 자신도 멋대로 생각하지 말게."
  "자네 잘도 그렇게 말하는군. 그런 것 때문에, 대학 성적도 좋았으면서,
대기업에서 근무하지 않는 건가. 이런 시골 거리의 작은 가게에서 만족해선 안돼."
  게이꼬는 과자를 싸는 작업을 하면서,
  "나까가와씨, 남의 책을 멋대로 보고서 시비하시는 건 실례가 아닐까요. 모든
사람마다 각자의 생각이 있지 않겠어요."
  "게이꼬양! 그런 사람이 되지 마세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상인이라면 더욱
이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이런 합리주의 경쟁
사회에서,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의 손님에게 마음의 아름다움을 호소해 봐야
쓸데없는 일일 뿐이죠."
  "전 나까가와씨 같은 어려운 주장은 잘 모릅니다. 다만 다만, 마음으로
느끼는 것을 소중히 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유끼꼬도 나서서 게이꼬의 말에 맞장구쳤다.
  "정말이야, 게이꼬양에게 동감이에요! 말없는 게이꼬의 조용한 저항이여! 더 말해
봐요"
  이때 많은 손님이 계속해서 들어왔으므로 언쟁은 자연히 멈추어지고 말았다.
  이날 오후 다도회가 열리는 다실에서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가야마는
게이꼬에게 새삼스레 격려의 말을 했다.
  "게이꼬양 수고했어요. 피곤하죠"
  "아니에요. 저는 즐거웠는걸요."
  "야마다 선생님은 멋있는 분이셔 솔직하게 기뻐해 주시다니. 그것도 다도의
마음일까 자칫하면, 그런 훌륭한 선생은, 으시대어 솔직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도."
  "그렇군요. 모두 좋은 사람뿐입니다."
  "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과 사귀느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해요."
  "전 좋았어요.모두 좋은 사람뿐이던걸요. 그보다 참, 지배인님, 오늘 아침
나까가와씨와 매뉴얼 이야기를 하셨는데, 매뉴얼이라는 게 뭐죠"
  "흠, 또 게이꼬양의 호기심이 시작됐나 매뉴얼이란 안내서라고 할까,
텍스트라고 할까, 기본을 생각하는 텍스트라고 말해야 할까 세상이 복잡하게
되면 기본을 중요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게 많아지죠. 특히 고도의 기술 사회이니까,
매뉴얼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어째서 나까가와씨에게 반대하였습니까."
  "아니에요, 난 매뉴얼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에요. 나까가와씨가 말하는 접객
관계의 매뉴얼은, 돈을 벌기 위해서 손님을 적당히 접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그렇군요 접객이라 하면, 손님의 입장에 서서 해야겠죠."
  그렇고말고. 그러므로, 그런 매뉴얼은 손님 측에서 보면, 친편일률적인 것밖에
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우리 가게에서는, 형식보다 기본적인 생각을 중시하라고 하시는군요.
그것도 매뉴얼입니까."
  "바로 그거^36^예요. 그 마음을 잃으면 생각과 행동이 이상하게 되어, 가게는
단순한 돈과 물건의 교환소가 되어버리죠. 그렇다면 자동 판매기로 족하지, 인간이
있을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여러 훌륭한 사람과 만나, 그 분들과 마음이 통하기 때문에, 우리 일의 기쁨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요.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을 이득과 손해의 대상으로써만 생각한다면 인간
사이의 서로 즐거워하는 일의 멋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인간이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기뻐하지 않아선 안돼죠."
  "인간이니까 효율을 올려서 수익을 얻고, 풍족하게 살고자 생각하는 욕심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뭔가 쓸쓸해요, 물질이 풍부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사고 방식"
  두 사람의 대화는 진지하기만 했다.
  그날 밤 늦은 시각 제일 늦게 온 손님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전송을 하고
나서 게이꼬는 청소하고 과자를 정리한 뒤 내일의 준비를 했다.
  추운 겨울의 하루도 끝났다. 우늘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손님들도 많이
와주었으므로 고마운 일이다.
  게이꼬가 사복으로 갈아 입고 나와 보니 가게의 불이 꺼진 주위는 더욱 차갑고
조용해진 것 같다.
  수수한 옷에 털로 짠 커다란 쇼올을 머리부터 완전히 뒤집에 쓴 수녀와 같은
게이꼬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멀어져갔다.
  게이꼬가 큰길로 나섰을 때 지붕 위까지 눈이 앃인 자동차가 어떤 집을 찾는 듯
옆을 지나쳐 가는 중이었다.
  게이꼬가 혹시나하여 고개를 돌아보자 자동차는 가게 쪽으로 향해 갔다.
  게이꼬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 차가, 가게 앞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 문득 '저 차, 과자를 사러 오는 건
아닐까'하고 게이꼬는 생각했다. 그렇게 되자, 게이꼬는 이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게 쪽으로 가고 있었다.
  역시 그 차는 '춘추암' 앞에 정차해 있었다.
  게이꼬가 자동차의 문에 노크를 하자 안에서 창이 열린다.
  게이꼬는 불쑥 물었다.
  "과자가 필요하십니까?"
  "여기, 춘추암이죠?"
  "네, 그렇습니다."
  "이미 끝났군요."
  "네, 그러나 난 이 가게 가람이니까요 과자가 필요하시다면, 곧 가게를
열겠습니다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까 그거 고맙습니다. 부탁합니다."
  "네 금방 열 테니까요. 잠시 차 안에서 기다려 주세요. 밖은
추우니까요"
  "미안합니다."
  게이꼬는 다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의 조명이 켜지자 게이꼬는 다시 나와서 손님을 안내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미안합니다. 겨우 문을 닫았을 텐데."
  게이꼬는 금방 가스 스토브에 불을 붙였다.
  "먼 곳까지 이렇게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지금 곧 난방을
넣었으니까요."
  45,6세 쯤으로 보이는 점잖은 신사는 시로도이다.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닫혀 있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면서 왔습니다."
  게이꼬는 서둘러 진열 케이스의 하얀 덮개 천을 벗기면서,
  "약간 한걸음 늦으셨습니다만 이렇게라도 때를 맞춰서 다행입니다."
  선 채로 시로도는 안도하면서 말했다.
  "실은, 나의 어머니가 암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계셨는데 연세가
연세이신지라, 아무래도 병도 심상치 않아서. 아침에도 의사가 '앞으로 하루
이틀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만나게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알리세요.
잡숫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잡숫게 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게이꼬의 얼굴색은 점차 변해갔다.
  "그래서 '어머님, 뭐 잡숫고 싶은 것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전에
오쓰쓰의 춘추암의 과자를 먹었더니, 매우 맛있더라. 한번 더 그걸 먹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과자 이름은요 하고 물었더니, 잊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과자라면 비싼 것도 아닙니다. 제가 곧 사올 테니까 기다리세요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공교롭게 이무끼 부근에 눈이 와서, 고속 도로가 50킬로의 속도
제한으로 차들이 줄줄이 밀려서 움직이고 있는 거^36^예요. 초조한 마음으로 겨우
도착했더니 겨우 도착했더니 이미 가게가 닫혀 있던 거^36^예요.
  어머니가 건강한 분이라면 다음 기회도 있겠지만, 오늘 내일을 아 수 없는
환자라서, 이 기회를 놓치면, 생애에 두번 다시 기회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자, 견딜
수가 없어서 괴롭기도 하고요
  어머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잘 됐어요. 당신 같은 친절한 아가씨를
만나서 다행이었어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게이꼬의 얼굴이 감동으로 굳어져 간다.
  "그랬습니까"
  게이꼬의 얼굴은 어떤 결의마저 느끼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게이꼬도 이 이야기를 듣고, 감격해 버려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어쨌든 이 세상
마지막으로 우리 가게의 과자가 먹고 싶다고 하는 손님에게 어떻게 보답하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했다.
  게이꼬는 자신의 경우를 바꿔 미루어 보았다. 내 어머니도 병상에 계신다, 그
어머니가 만약 이 세상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디의 무엇이
먹고 싶다고 말하면, 나도 무슨 일이 있어도 사러 달려 가겠지 그러한 경우,
그 가게가 어떻게 응대해 주면 기쁠까 라고. 자신이 그렇게 함으로써 받아서
기쁜 것을, 손님에게 그렇게 해드리리라고 생각했다.
  게이꼬는 깊은 생각에서 깨어나며 정신을 차려서,
  "알았습니다. 그런 사정이라면, 과자를 고르는 것은 저한테 맡겨 주시지
않겠어요."
  "그것은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부탁합니다."
  게이꼬는 시로도에게 차 한잔을 대접하고서 바로 과자를 고르기 시작했다.
  맡겨 달라고는 했지만, 내심으로는 곤란하기도 했다. 증병인 분이 먹을 수 있어야
하니까 힘 들여 씹는 것과, 떡처럼 복에 걸릴 위험이 있는 것을 우선
제외하고 먹기 좋은 과자만 2개씩 세트했다.
  그때 문득, 이 과자와 다르다고 하시면 어쩌나 생각했다. 그런 때는 그 댁을 알아
놓고 갖다 드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저 괜찮으시다면 주소와 성함과 전화번호를, 저기 메모지에 써
주시겠어요"
  "저 말입니까, 아아, 좋습니다."
  시로도는 메모지에 주소, 성명, 전화번호를 적었다.
  과자 준비가 다 되자 게이꼬는 시로도에게 건네 주며,
  "너무 기다리시게 했습니다. 이것 제 나름으로 적당히 골라서
싸보았습니다. 아무쪼록 어머님께 드시게 해주세요."
  시로도는 지갑을 꺼내면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밤늦게 죄송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입니까?"
  "이 과자 대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게이꼬의 목소리는 아주 결연했다.
  "어째서죠?"
  시로도는 의아해했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에 우리 가게의 과자를 잡슷고 싶다는 손님께 모처럼
저희들의 성의이니까요."
  "그래도 일단 닫았던 가게를 열어 주고,게다가 수고를 기치고 과자까지
무료로 받아 돌아간다면 벌받을 거^36^예요. 어쨌든, 과자값은 받아 주세요.
부탁해요."
  "손님, 그런 말씀 마시고 그대로 저의 성의도 받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정 그렇게 이야기하시니 어머님도 기뻐하실
거^36^예요 아가씨 이름이라도 알려주시겠어요?"
  "게이꼬라고 합니다. 훌륭한 분이군요. 실례입니다만 몇살이죠?"
  "열아홉입니다."
  "내 딸보단 한살 위인데 훨씬 똑똑하고 총명하게 보입니다. 훌륭해요."
  "그보다, 어머님께서 기다리십니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셔서, 잡수시게
해드리셔야죠."
  몇번이나 감사하다고 말하는 시로도는 말만으로도 나타낼 수 없는 어떤 감동을
느꼈다.
  "네, 그렇군요 고마워요 게이꼬양. 고맙습니다."
  밖에서 조금씩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차에 타려고 하는 시로도에게 게이꼬는
당부를 했다.
  "이런 밤이니까 아무쪼록 운전 조심하셔서 돌아가십시오. 고맙습니다. 어머님
잘"
  눈물을 글썽인 채 시로도는 또렷한 목소리로,
  "고마워요, 게이꼬양 오늘 밤 일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36^예요"
하고 시동을 걸었다.
  서서히 차가 움직였다. 백밀러로 바라보니 게이꼬는 몇번이나 인사를 하며
전송하고 있었다.
  게이꼬는 마음으로부터 그 할머니의 안녕을 빌었다.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고,
멀리서부터 와주신 이런 어른은 얼마나 효성이 지극한 분인가. 사람의 마음이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온 게이꼬는 부디 그분이 무사히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의
작은 소망에 응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다시 가게로 들어온 게이꼬는 가스를 끄고 하얀 천을 씌우고 가방 속에서 돈이
들어 있는 봉투를 꺼냈다. 봉투에는 '코트 적립금'이라고 씌여 있었다.
  그 속에서 천 7백엔을 꺼내서 그날 매상에 추가시킨 게이꼬는 불을 끄고 밖으로
나왔다.
  혼자 밤길을 걷는 게이꼬의 걸음은 꽤 분주했지만 그 표정만은 여느때보다 한결
밝았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게이꼬 또래의 너댓명 남녀 중에서 누군가 다가와 게이꼬의
어깨를 툭 친다.
  "게이꼬 아냐?"
  고개를 돌려보니 아는 친구였다.
  "무척 즐거운 표정인걸. 혹시 데이트하고 오는 길 아냐?"
  게이꼬는 당황하여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일하고 오는 길이야."
  "변명할 것 없어. 실은 우리도 데이트중이거든."
하며 친구는 일행에게로 눈길을 준다.
  "우린 저녁 먹고 디스코 클럽에 갈 거야. 너도 같이 가자."
  게이꼬가 사양하자 친구는 요란그럽게 손을 흔들며 가 버렸다.
  게이꼬는 맛있는 저녁을 사먹고 디스코 클럽에가는 친구가 조금도 부럽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조금 전의 마지막 손님 생각으로 가득차 있고 그래서 얼굴엔
밝은 표정이 떠오르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맨 먼저 어머니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교통
사고를 당해 벌써 몇달째 누워 있는 중이다.
  "어머니, 돌아왔어요. 오늘은 기분이 어떠세요?"
  "오늘은 추웠지? 그런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니?"
  "그렇게 보여요?"
  "넌 무슨일 이 있으면 곧 얼굴에 나타나는구나."
  "별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기분이 좋다니 나도 모를
일이에요 얼른 저녁상 차릴께요."
  어머니는 안쓰러운 눈길로 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게이꼬가 부엌으로 들어섰을 때 여동생이 앞치마를 두르고 생선을 굽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늦어서"
  "아냐, 언니. 할 줄 몰라서 생선만 구워놨어."
  게이꼬는 서둘러 앞치마를 두르고 남비에 물을 붓고 저녁 준비를 했다.
  "수고했다. 이젠 언니가 할 테니 밥상을 차려줘."
  그때 소학교 6학년인 남동생이 들어오더니 생선구이를 손가락으로 쿡 찔러 보더니
과장된 몸짓으로 말했다.
  "어휴! 또 고등어 구이야. 가끔씩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 먹었음 좋겠다.
  작은 누이가 손을 들어 나무라듯이 쥐어흔든다.
  "사내 대장부가 반찬 타령하면 못써. 우리집은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나가지
않으면 안돼. 알만한 애가 왜 그러니"
  "그럼 고등어 반찬이라도 바꿀 수 없어? 반찬 타령 안하게"
  남동생은 여전히 볼멘 소리로 중얼거린다.
  "네네, 도련님, 반찬 타령 안하게 해드리죠"
  게이이꼬의 말에 남매는 가르르 웃어 버렸다.
  게이꼬에게는 남동생 둘, 여동생이 셋이 있다. 장녀인 게이꼬가 식탁을 에워싸고
동생들과 함께 저년 한때의 단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도 이때뿐인 것이다.
  맛있게 식사를 하던 막내가 갑자기 물었다.
  "이것 맛좋은데요 아버진 지금쯤 어디서 무엇 하고 계실까?"
  "아버지 얘긴 꺼내지 않기로 했잖아!"
  바로 위의 누이가 말을 자른다.
  저희들끼리의 토닥거림을 보고 게이꼬는 마음이 아팠다. 막내는 이제 소학교
4학년이다. 어리다면 어리고 아직 응석을 부릴 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집을 나가 버린 아버지에게서는 벌써 몇년째 소식이 없다. 동생들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이따금씩 아버지가 보고싶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이 부러울
테지
  식사를 마친 후 게이꼬는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소반에 담아 혼자 식사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병석에 누워 있는 사람답지
않게 매우 밝았다.
  게이꼬는 무엇보다도 그 점이 다행스러웠다. 어머니는 자신이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아직 어린 딸에게 일을 시키는 것을 늘 괴로워했다. 그러면서도 자식의 마음을
생각하여 언제나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게이꼬는 잘 알고 있다.
  그날 스텐드를 밝히고 책상 앞에 앉은 게이꼬의 일기장에는 한편의 시가 적혀지고
있었다.

  한 사람의 손님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한 사람의 손님의 생활을 위해
  나의 이익을 저버린다.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 상인의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다.

  시계가 열시를 알린다. 게이꼬는 시계를 본 다음 고개를 돌려보았다. 불이 꺼진
방안에는 희미한 스텐드 불빛 아래로 나란히 누워 잠들어 있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모습이 보인다.
  맨 끝, 방문 쪽 비어 있는 곳이 게이꼬의 자리이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으나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벌써 10시 그 손님
지금쯤 나고야에 도착했을까? 불현듯 그 손님이 떠오르고 꼬리를 물고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이어진다.
  과자를 보고 기뻐하는 노부인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며 이 과자가 아니라고
고개를 젖는다. 그 말에 난감해하는 그 사람.
  또 다른 영상은, 과자가 목에 걸려 고생하는 그 부인과 어쩔 줄을 모르는 그 사람.
  목에 걸린 과자를 토해내게 하려고 진땀을 빼는 모습, 등등이 게이꼬의 머릭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밤, 이것저것 온갖 생각이 자꾸 떠올라 게이꼬는 잠을 잘 수조차 없었다.
  다음날, 어제 저녁의 일이 걱정되어 게이꼬는 어느때 보다도 일찍 가게로 나갔다.
  "안녕, 나미꼬."
  나미꼬가 가게 앞을 쓸다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게이꼬를 맞는다.
  "안녕 게이꼬, 엊저녁에 늦게 퇴근했잖아?"
  "그래."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빨리 나왔지?"
  게이꼬는 급히 전화기 쪽으로 다가가며 대답했다.
  "조금 걱정되는 일이 있어서"
  어딘가로 다이얼을 돌리는 게이꼬의 표정이 조금은 초조한 빛을 띠고 있다.
  "여보세요. 시로도씨인가요?"
  "아, 게이꼬양이군요. 내가 어제 가게에 갔던 시로도 입니다."
  "어제는 멀리까지 와주셔서 고마왔습니다. 그런데 어제밤 어머님은
어떠셨는지요?"
  "네. 나야말로 고마웠습니다. 어제밤은 그때부터 곧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역시 차가 밀려 집에 도착했더니 10시 반이더군요. 그랬더니
어머니는 기다리다 지쳤던지 10시에 숨을 거두신 뒤였어요
  모처럼 게이꼬양이 어머니를 위해 골라주신 과자 어머니에게 맛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유감입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어쩐지 나도 돌아가는 길에 공연히 신경이 쓰여서 늦어질 것 같다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지요. 그리고 게이꼬양 이야기도 했습니다.
  게이꼬의 얼굴은 긴장해 있었으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울음을
삼키느라 잠시 말을 끊고 있는데 수화기 저편에서 게이꼬양! 게이꼬양! 하며 가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미안합니다."
  시로도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말입니다.당신의 마음이 통한 것일까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으셨답니다. 아, 그리고 말입니다. 숨을 거두시기 전에 갑자기
당신의 가게를 '그 가게, 좋은 가게로군' 하고 말씀하시더라는 거^36^예요.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고마와요, 정말로. 당신의 착한 마음, 평생 잊지
못"
  시로도 역시 목소리가 젖어드는가 싶더니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게이꼬는 그의 말을 듣는 동안 무언가 목구멍을 틀어 막을 것처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게이꼬의 입을 열었다.
  "장례식은 언제인가요?"
  "네, 내일 오후 1시 저희 집에서 거행할 겁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게이꼬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
하늘을 바라보아도 부옇게 어른거릴 뿐이었다.
  마지막 이 세상을 떠나며 먹고 싶은 것도 먹지 못하고, 소박한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사람을 생각하면 가엾고 불쌍해서였다.
  그때 막 가게 안으로 들어오던 지배인 가야마가 게이꼬의 모습을 보고,
  "게이꼬, 안녕? 그런데 왜 그러지? 무슨 일이 있었어?"
하고 걱정스레 묻는다.
  게이꼬는 한껏 마음의 동요를 억누느고 애써 눈물을 감추었다.
  "아녜요. 아무일도 아녜요."
  "응 무슨 일이지 평소의 게이꼬양답지 않게."
  "아무일도 아녜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짐짓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하는 게이꼬의 태도에 더는 묻지 않았지만
가야마는 왠지 석연찮은 표정을 지었다.
  그날 오전 게이꼬는 좀처럼 하지 않던 아주 작은 실수를 했다. 반드시 게이꼬의
실수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손님이 물건을 두고 갔는데 그것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것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손님이 자리를 뜨면 혹시 잊은 물건이라도 없는가 싶어 꼭
확인하던 그녀였는데 그날따라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사찌꼬가 그 물건을 들고 뒤쫓아 갔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후라 만나게 될지도
걱정되었다.
  그런데 "다녀왔습니다"하는 사찌꼬의 목소리를 듣고 게이꼬는 고개를 들었다.
사찌꼬의 손에 물건이 없음을 보고 게이꼬는 적이 마음이 놓였다.
  "죽어라고 뛰어갔어요. 다행이 지하철 홈을 나가기 전이더군요 아주
기뻐했어요. 돌아오는 길에 역전에서 나까가와씨를 만났는데 그가 바래다
주었어요."
  "그랬군 앞으로는 우리가 좀더 손님에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되겠어."
  그때 나까가와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
  가야마 지배인이 그에게 말했다.
  "오, 미안하군. 사찌꼬를 바래다 주었다며"
  "아냐. 어짜피 이곳에 오려던 참이었으니까."
  가장 나이어린 나미꼬가 차를 내오면서 사과를 했다.
  "지배인님, 사찌꼬 언니뿐 아니고 우리들 모두가 신경을 덜 썼던 탓이에요. 언제나
선배만 꾸중을 들으니까 미안해요"
  게이꼬는 그녀의 사과에 몸둘 바를 모르며 모두를 달래듯이 말했다.
  "내 담당 손님이데 내가 조심하지 않았던 탓으로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
미안해요."
  "누구만의 담당이 아니에요. 가게의 손님은 가게 전체의 손님이니까. 가게 전체가
신경을 써야지"
  무슨 소린가 영문을 몰라하던 나까가와가 끼어들었다.
  "모두들 무슨 얘기 하고 있는 거요?"
  "아까 왔던 손님이 물건을 놓고 가서 말이야."
  나까가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모두들 머리가 돈 것 아니야? 물건을 잊은 것은 손님쪽이지 잊어먹은
손님이 잘못이지 당신들이 사과를 할 일은 아니지 않아 옳은 건 옳고 그른 건
그른 거야. 그런 식으로 남이 실수한 것까지 일일이 책임을 지다가는 이 각박한
세상 살아나갈 수가 없어 자기 책임의 범위 안에서 살펴나가면 된다구."
  게이꼬는 아까부터 무언가를 생각한 듯하다가 가야마에게 입을 열었다.
  "재배인님, 잠깐 공장엘 갔다 와도 될까요?"
  "무슨 일로?"
  "별도 주문에 대해서 의논하려구요"
  지배인의 허락을 받고 가게를 나서는 게이꼬의 뒷모습이 어느때보다도 쓸슬하고
처량해 보였다.
  게이꼬가 나간 뒤 가게 안에서 나까가와는 가야마에게 말했다.
  "요즘 세상에 그런 것쯤 알고 있어야 한다구 게이꼬양도 풀이 죽어 나갔지
뭔가."
  "알지도 못하면서 참견하지 말라구. 저애가 풀이 죽은 것은 아침부터 일이야."
  "그러고보니 게이꼬가 아침 일찍 출근하자마자 어딘가에 전화를 하더니 장례식은
언젠가요 하고 묻고 있었어요. 틀림없이"
  "그래서 그런가"
  "애처롭다고 할가, 애서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명랑하게 행동을 하고 있는
게이꼬는 다른 사람들이 신경을 슬까봐서"
  그녀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가야마는 동료의 일에 아무렇지 않게 해주려고 마음써
주는 그녀들의 착한 마음이 고맙고 훌륭하게 생각되었다.
  게이꼬가 찾이간 공장은 7,8명 일하는 작은 규모였다. 공장장이 먼저 게이꼬를
알아보고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의 안내로 직원 식당으로 내려왔다.
  "웬일이지? 새삼스럽게 아버지에게 무슨 연락이라도 있었어? 기운이
없으니."
  "아녜요 조금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럴 거^36^예요."
  "그래? 조심해야지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은데. 무리를 하지 말아야지."
  "네"
  중년이 지난 공장장은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이고 감회에 젖으면서 말했다.
  "참 세월 빠르군, 그때로부터 벌서 4년이 지났으니. 그때 여러 사람의 얘기를
들었던들 게이꼬도 벌써 올해에 졸업을 하는 건데"
  "이제 그 얘기는 하지 말아 주세요."
  4년 전, 공장장이 발기인이 되어 게이꼬를 고등학교 보내는 후원회를 만들었었다.
  모두들 기꺼이 후원인이 되어 주겠노라고 나섰지만 게이꼬는 '일을 통해 자신을
키우겠다'며 정중히 거절했었다.
  가난한 살림, 다섯이나 되는 동생들, 그리고 생활력 없고 무력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신이 짐을 짊어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 주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응석을 부리고 있으면 그나마 집단이 지탱되지
않아요'라는 말이 열다섯살짜리의 말인가 생각하며 애처롭고 대견해서 눈시울을
붉혔었다.
  "나도 이렇게 고마운 분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이라도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감사하고 있어요."
  "새삼스럽게 그런 말은 하지 않아도 돼."
  "그보다도 장례식 과자를 만들어 주셨으면 해요."
  "장례식? 집안에 누가 불행을 당하기도 했어?"
  "아니에요. 손님이"
  "어디 사는 분인데?"
  "나고야^36^예요."
  "저런 멀리도 사는군 별도 주문인가?"
  그 말에 대답을 피하며
  "오늘 저녁까지 될 수 있을까요?"
  "좋아, 만들어줄게. 완성되면 전화를 할 테니까. 그런데 예산은?"
  "5천엔 정도요"
  "알았어."
  오후가 되어 가게에는 아무도 없다. 게이꼬는 미안한 듯이 지배인에게로 갔다.
  "지배인님, 저 내일 유급 휴가 받을 수 없을까요?"
  "아아, 그래요. 피곤할 테니까 쉬어요. 그나저나 좀처럼 쉬지 않는 게이꼬치고는
희한하군. 무슨 일이 있어요?"
  "아뇨, 별로"
  "설마 나까가와하고 어딘가 가는 건 아니겠지?"
  "나까가와씨하고 어딘가라니 무슨 뜻이지요?"
  "아니, 그렇디면 됐어요 아까 이것 놓고 갔어요."
  "저에게요? 무엇일까"
  게이꼬는 편지를 받이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게이꼬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그날 오후, 공장으로부터 별도 주문한 과자가 다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게이꼬는
과자를 포장해서 가방 속에 넣은 뒤 '코드값 적립'이라고 씌어진 봉투에서 5천엔을
꺼냈다.
  드툼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더 얇아지는 봉투, 게이꼬는 금전 출납기를
두드려 5천엔을 입금시켰다.
  그날 오후, 금전출납기에 입금된 5천엔에 대해 지배인을 비롯한 다름 사람들은
궁금해 했다.
  그러나 곧 그것이 게이꼬의 별도 주문한 몫이라는 걸 알게 되고, 고객의 장례식에
참석할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랬었군! 그래서 내일 유급 휴가를 받았으면 하고 원했었군"
  지난해 명절에도 게이꼬는, 병으로 누워 있는 어떤 부인의 집을 찾아가 유일한
가족인 아들과 놀아주기도 했었다.
  그 얘기도 손님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가게안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
자신도 가난하게 살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착한 마음씨.
  "그보다도 게이꼬의 손님 장례식에 참가하는 비용까지 부담시켜도 괜찮을까요?"
  "그 비용을 어떻게 해서든지 회사에서 부담하도록 할 수 없을까요? 그 불우한
게이꼬에게 회사가 신세를 져서는 안되겠지요. 만일 회사에서 부담할 수 없다면
우리들이 돈을 모으겠습니다만"
  "아니, 잠깐만. 그야 나도 회사에서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그애의
행위를 회사 명의로 한다면 그애 기분이 어떻게 될까 걱정되는군"
  "그래요, 바로 그 점이에요. 그애가 말하는 '인간 행위의 아름다움'이라는 그애
나름의 깊은 세계에 끼어드는 셈이 되지요."
  "다른 사람으로부터 강요당해서 하는 행위가 아닌만큼 이상한 개입은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애의 월급을 알고 있는 만큼 더
괴로워지는군 어쨌든 이 문제는 나에게 맡겨줘요. 기회를 봐서 처리를 할
테니까."
  게이꼬가 장례식에 입고 갈 옷을 이것저것 궁리하고 있는데 옆방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게이꼬, 넌 이번 겨울에 코트를 산다고 돈을 적립하고 있더니 어떻게 되는 거니?
빨리 사지 않으면 겨울이 끝나고 말 텐데."
  게이꼬는 옷을 손에 들고 망설이고 있었으나 밝은 목소리로,
  "응, 올 겨울은 참겠어요.내년 겨울에"하고 대답했다.
  "해마다 너는 내년으로 미루고만 있구나5,5,5^ 내년 같으면 에미가 일을 해서
좋은 것 사주겠다"
  어머니를 향해 밝고 스스럼없는 표정으로 대하는 게이꼬이다.
  "어머니도 참 그런 건 어머니가 걱정 안해도 돼요."
  낡은 옷장을 열어 다시 이것저것 옷을 만져 보면서 게이꼬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일 나고야의 장례식에 가려 해도 입을 것이 없다. 게이꼬는
역시 한참 멋을 부릴 나이의 아가씨다. 호화롭게 치장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초라한 모습만은 보이고 싶지 않은 게 그녀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한 벌뿐인 코트는 동생에게 주어 버렸고 올해 바겐세일 때 살 생각으로
적립한 돈은 제물이나 여비로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옷이
아니라고 억지로 자신에게 타일렀지만
  그중 하나를 골라 대보며 거울에 비춰보는 게이꼬의 표정이 왠지 착찹해 보인다.
  다음날 코트 대신 털실로 짠 큰 쇼올을 두르고 게이꼬는 역으로 향했다.
  교오또에 나가 신간선으로 가면 나고야까지 1시간 안팎이면 충분하지만 단
몇푼이라도 차삯이 싼 재래 철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플랫홈에서 기차를 기다린 게이꼬에게 누군가 다가와서 아는 체를 한다.
  놀라서 바라보니 나까가와였다.
  "웬일로 게이꼬양이 어디를 다 가지요?"
  "네, 잠깐 다녀올 곳이 있어서요."
  "희한하군, 게이꼬양이 어디엘 가다니."
  "나까가와씨도 어딜 가세요?"
  "나? 나는 하꼬네까지 출장을 가지 전동차를 타면 돌아오는 길에 눈이
와도 안심이 되거든요, 그리고 끝난 다음에는 연회가 있고."
  열차가 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내리는 사람이 다 내리자 발차한다는 신호의
벨소리가 들렸다.
  "그럼"
  게이꼬가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기차에 오르자 나까가와가 급히 올라탔다.
  "기다려요, 나도 탈 테니"
  움직이기 시작하는 열차 입구에 선 채 게이꼬가 말했다.
  "나까가와씨, 괜찮아요? 급행을 타면 좀더 빨리 도착할 텐데."
  "이왕 탈 바에는 게이꼬양과 함께 타는 편이 데이트 기분이 들어서 즐거운걸."
  게이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까가와는, 빈 자리를 찾아서 앉고 그의 맞은편 좌석에는 게이꼬가 앉았다.
  "무거워 보이는 군요. 그 짐 선반에 얹는 게 어때요?"
  "괜찮아요."
  나까가와가 무릅 위의 짐을 억지로 뺏으려고 하자 게이꼬는 반사적으로 소중한
물건인양 끌어안았다.
  "뭐가 들었는데?"
  "제단에 바칠 과자^36^예요."
  "장례식에 가요? 누가 죽었는데"
  "손님이에요."
  그 말에 나까가와는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오른다. 그것은 어이없다는 심정과
한편으로는 감동하는 표정이었다.
  "그랬었군, 출장이로군요. 여비를 아끼려고 재래선을 타고 게이꼬양은 꽤
야무지군."
  "아니에요."
  "아니라니, 그럼 사적인 일로? 꽤 친했던 손님이로군. 게이꼬양도 좋아했어요? 그
손님? 남자? 여자?"
  질투를 느낀 듯한 나까가와는 무척 냉정하게 말했다.
  곤혹스로워 하며 게이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까가와는 그야말로 타이르는 듯한 태도로 말한다.
  "이봐요, 게이꼬. 어떤 사이의 손님인지는 모르지만, 게이꼬는 자기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건 게이꼬의 착각이라구 모든 손님은 회사의
손님이지. 그 증거로 손님이 가져다 주는 이익은 모두 기업의 이익이에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구 손님 장례식에 자기 비용으로
참석해야 할 의무도 책임도 게이꼬에게는 없어요. 다만 자기 만족일 뿐이지"
  게이꼬는 그 말에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괜찮아요."
  나까가와는 이번에는 부드러운 태도로 바꾸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그 메모 읽어 보았소?"
  "네."
  "어때? 아니, 화답을 재촉하는 것은 아니오"
  게이꼬는 어떻게 거절할까 말을 찾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나 같은 것에게 고맙긴 하지만 나까가와씨는 나를 오해하고 있어요.
나는 나까가와씨가 생각하는 것 같은"
  "괜찮아 내가 게이꼬를 어떻게 알든 그것은 내 주관의 문제이지 게이꼬가
곤란할 것은 하나도 없어요. 사랑은 화려한 착각이고 아름다운 환상이라고 하지
않소."
  진심으로 설득하려는 나까가와였다.
  "그런 나까가와씨, 나는 지금까지 아까가와씨를 조금도 남성으로 의식하고
접촉했던 것이 아니에요. 오해를 준 일이 있다면 사과하겠어요."
  "하지만 나에게 친절하게 해주지 않았어요?"
  "나는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성의를 다해 섬기고 있어요."
  "손님이라고? 나 당신네 가게에서 무엇 한가지 산 일이 없는데 어째서
손님이오?"
  "가게를 내고 있다는 것은 손님을 부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일부러 가게에
찾아오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손님이에요. 만남을 소중히 여기라고 교육받고
있어요."
  "그건 어쨌든 차를 끓여 주고 무엇이든 나눠 주고 그런 때 당신은
진심으로 나를 대해 주었고, 나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지
뭐요"
  "미안해요. 미숙해서 오해받은 결과가 되어서"
  나까가와는 화가 난 듯 정색을 하고 물었다.
  "요컨대 게이꼬양은, 나를 싫어하는 거요?"
  "어째서 인간의 접촉을 남자와 여자, 좋고 싫은 것만으로 한정하는 거지요? 그런
것은 서로가 이해하고 친해진 뒤에 자연스럽게 성립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차장이 표 검사를 하러 와서 그들의 얘기는 잠시 중단되었다.
  "이봐요. 게이꼬, 나쁜 애긴 안할게. 나하고 결혼하면 그런 점원 노릇 같은 비참한
일은 절대 안 시킬 거요. 정말이라구. 절대적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나까가와씨는 우리들 같은 가게일을 보는 사람을 비참하다고 보시나요?
나까가와씨도 상인이 아닌가요?"
  "우리들 같은 비지니스맨과 동일시하면 곤란한걸. 당신들은 단순한 고용자가
아니오? 게다가 남의 어리애에게 종이접기를 해주면서 비위를 맞추기도 하고 심성도
모르는 손님에게 편지를 써서 추파를 보내기도 하잖소. 이것을 비참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잖소. 남의 마음을 끄는 것은 호스티스와 마찬가지란 말요."
  "말씀이 너무 지나치시군요."
  "냉정하게 말한다면 손님은 수요가 있으니까 물건을 사러 오고 그 수요에 대한
공급의 첨단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당신들이란 말이오. 특별한 인간
관계만으로 수요와 공급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거든.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그
일은 메마른 비지니스란 말이오."
  "아무렇게나 생각하세요. 사고 방식 차이니까요."
  게이꼬의 머릿속에 상인의 자세를 말했던 예의 시귀절이 떠오른다.
  '당신의 오늘의 일은 단지 한 사람이라도 좋다. 당신에게 고맙소! 하고
마음으로부터 인사를 하고 싶어하는 손님이라는 이름의 친구를 만드는 일이다.'
  다음 역에서 나까가와는 기차에서 내렸고, 그는 미끄러져가는 열차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로군"
  나고야에 내린 게이꼬는 표지판을 바라보며 걸었다. 처음 걸어 보는 그 거리는
낯설기만 했고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안내소가 눈에 띄자 곧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소의 늙은 직원은
그야말로 친절하게 지도를 꺼내 가리키면서 알려 주었다.
  게이꼬로서는 낯선 곳에서는 한마디가 그토록 따뜻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
안내원에게는 실제로 득이 될 일이 아닌데도 친절하게 응대해 주는 것이다.
  안내원이 적어 준 대로 약도를 보며 나고야 시내를 헤매는 동안 하늘에서는 춤을
추듯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시로도가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 장례식은 광명사에서 한다는 종이 메모가 붙어
있었다.
  게이꼬가 다시 광명사를 찾이갔을 때는 이미 장례 준비가 끝나 있었다.
  "실례합니다."
  안으로 들어서던 게이꼬는 여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마주쳤다.
  "네. 누구신가요?"
  "저어, 오오쓰의 춘추암에서 왔습니다만."
  "네? 그 춘추암이라는 과자점? 설마! 거짓말! 아니 실례했습니다.장녀인
요오꼬입니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그 여학생은 '춘추암'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황급히 안으로 사라졌다.
  다시 그 여학생과 함께 나온 사람은 과자점에 왔던 그 시도로씨였다.
  "아, 게이꼬양! 그저께는 정말 고마왔습니다."
  "어머님의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서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부처님에게 하다못해
저희들의 마음을 바치고 싶어서 마음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시로도는 그저 감탄하여 게이꼬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게이꼬는 과자를 누군가에게 건네 주고 장례식에만 참석하려고 했는데, 시로도
가족들의 청으로 안으로 올라 가게 되었다.
  "어머니도 기뻐하실 겁니다.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안에는 꽤 호화스러운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게이꼬는 과자 포장을 풀고 시로도에게 건네 주었다. 그것을 제단에 올리고
게이꼬는 염주를 꺼내어 향불을 올리고 분향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처음뵙는 손님 이 세상 마지막에 우리 가게의 과자를 먹고 싶다고 말슴하신
분, 미처 시간을 대지 못해 정말 서운하셨겠지요. 좋아하시는 과자를 떠나시는 길에
갖고 가시라고 인사차 왔습니다. 아무쪼록 편안히 쉬십시오.
  모여 있던 시로도의 가족들은 게이꼬의 착한 마음에 차오르는 감동을 억제하며
숙연해졌다.
  모처럼 왔으니까 장례식 뒤에 식사를 함께 하자고들 했다. 게이꼬는 자신이
소박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소함 마음씀을 이런 식으로 크게 기뻐해 주니
쑥스럽기만 했다.
  게다가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이 어쩐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아 기가
죽었다.
  무엇보다 복잡한 그 자리에 오래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굳이 사양하고
절에서 빠져 나왔다.
  시로도의 가족들이 고마운 사람에게 차 한잔 대접해서 보내지 못한 걸 알아채고
뒤따라 갔을 때는 이미 게이꼬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눈발이 날리는 나고야 거리를 걸으면서 게이꼬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발을
멈추고 서성거려야만 했다.
  고별식에 참석하려고 했지만 식이 시작되려면 1시간 반이 있어야 하고, 그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 낯선 나고야에서는 없었다.
  눈발은 점점 커져 장례식이 거행될 때는 펄펄 날려 몇치 앞도 분간한 수 없을
정도였다.
  우산을 쓴 참배객들의 맨 뒤에 서 있는 게이꼬의 머리와 어깨에 수북히 눈이 쌓여
가고 있다.
  장례식 선두차 안에서 게이꼬를 바라보는 시로도의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갔을 때 그는 결렬한 고통에서 벗어나 극락으로 가신 것이라고
생각하니 별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19세의 게이꼬가 손님의 마음에 성심껏 보답하려고 우산도 쓰지 않고 눈을
맞으며 무심하게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의 아름다움에
감동되어 울고 말았다.
  인간이 인간에게서 받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기쁜 감정의 충격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 자신 일류 기업의 판매과장 자리를 맡아 많은 부하를 지배하고 지도하며
적잖은 업적을 올려 만족과 자부를 느끼고 있지만 상인에게 이런 멋진
현실적으로 있으리라고는 미처 몰랐었다
  그러할 때 문득 '상인의 모습에서 앞치마를 두른 부처님의 모습을 본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그야말로 게이꼬의 모습이 천사처럼 빛나 보였다.
  며칠후, 과자점 '춘추암'에는 게이꼬의 미담이 실린 시로도가 과장으로 재직중인
회사의 홍보 신문이 배달 되었다.
  나고야의 시로도로부터 부쳐온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부터 따뜻함을 받는다는 것이 이토록 감동적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며 게이꼬를 훌륭히 키워온 여러 사람에게 감사한다고 적혀 있었다.
  비로서 게이꼬의 선행이 알려지고 춘추암의 사장은, 상인의 길은 인간의 길이라는
것을 부하로부터 가르침을받았노라고 무척 행복해했다.
  춘추암에는 격려 전화가 끊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도그런 행동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던 나까가와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의 생각은 모두 틀린 것이었다고 시인하며 시집을 읽고 싶으니
빌려 달라고 했다.
  싸늘하지만 맑게 갠 오오쓰의 거리, 비록 코트조차 입지 않았지만 추위를 잊은 듯
걸어가는 게이꼬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옮기고 나서)

  지난 2월 일본 국회의 예산심의 위원회 회의실에서 질문에 나선 공명당의
오쿠보의원이 난데 없이 뭔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대정부 질문중에 일어난 돌연한 행동에 멈칫했던 장관들과 의원들은 낭독이
계속되자 그것이 한편의 동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야기가 반쯤 진행되자 여기저기에서는 눈물을 훌적이며 손수건을 꺼내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끝날 무렵에는 온통 울음바다를 이루고 말았다.
  정책이고 이념이고 파벌이고 모든 걸 다 초월한 숙연한 순간이었다. 장관이건
방청객이건, 여당이건 야당이건 편을 가를 것 없이 모두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국회를 울리고, 거리를 울리고, 학교를 울리고 결국은 나라 전체를 울린 '눈물의
피리'가 바로 '우동 한그릇'이란 동화다.
  감동에 굶주렸던 현대인에게 '우동 한그릇'은 참으로 오랜만에 감동 연습을 기켜준
셈이다.
  '울지 않고 배겨낼 수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 읽어 보라'고 일본경제
신문이 추천한 이 작품의 화제는 전 일본을 들끓게 하더니 급기야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체험한 어른들과 가난을 모르고 자란 요즘
어린이들에게 이 '우동 한그릇'은 어떠한 실체로 투영될 것인지 자못 궁금해 하면서
서둘러 이 작품을 엮어 소개한다.
  또 한편 '마지막 손님'역시 정직과 성실을 모토로 살아가는 한 소녀의 아름다운
이야기로써 물질 만능과 편의주의에 물들어가는 현대인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
주리라 믿으며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가 함께 읽어 보시길 바란다.
  끝으로, 이 작품의 한국어판 번역 출판권을 독점할 수 있도록 힘써주신 문공부
당국과 미디어뱅크의 이재성님, 그리고 영화감독 이상언님께 출판사를 대신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1989 년 7월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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