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내 얘기들

내 미국인 남편은 참 잘 삐집니다.

향기향 2012. 1. 12. 06:41

『울집의 커피 이야기』


남편과 저는 커피를 좋아합니다.

전 커피를 처음부터 블랙으로 마시길 시작했고.

남편은 한국의 믹스된 커피로 시작을 했습니다.

누군가가 제게 라떼를 사준다해도 캬라멜 마끼아또를 사준다 해도 전 언제나 블랙으로 마십니다.

블랙으로 마시는게 성에 안차 얼마전에 에스프레소 머신도 사게 되었지요.

항상 남편은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울 집의 여자는 남자처럼 커피를 마시고..울 집의 남자는 여자 처럼 커피를 마신다고...

커피에 설탕 넣는것과 크림 넣는게 안좋다고 잔소리한지 10년만에..

어느 날인가 부터 남편이 커피에 설탕과 크림을 넣지 않는 연습을 하더니,

이젠 그냥 마시는게 더 깔끔하고 좋다고 이야기 합니다.

잠자리에 들기전 남편은 항상 이 14컵 짜리 커피 메이커에 타이머를 설치하고 잡니다.

그러면 언제나 일어 날때 쯤 되면 이미 커피가 하나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일어나자 마자 한잔 마시고 남은건 마우병에 담고 가는데 꼭 한잔분을 남겨 놓습니다.

저보고 마시라고 남겨 놓는거죠.

근데 남편이 커피를 남겨 놓는걸 대단한 저에 대한 배려로 생각합니다.

마우병에 다 안들어가 남겨 놓는걸로 알고 있는데 마치 저를 위해 남겨 놓은 것처럼 공치사를 합니다.

좋은 말도 하루 이틀이지..

매 저녁 먹을 때마다 내가 당신을 위해 남겨 놓은 커피 마셨냐고 꼭 물어 봅니다. 켁!!

어제는 좀 짜증이나서리..

공치사 좀 그만 하라고 핀잔을 주었더니 금새 얼굴빛이 달라지는게 보였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커피 남겨 놓은거 아니까 그만 좀 하라했더니...삐졌습니다.

덩치에 안맞게 잘 삐집니다.

이름이 John이라 구두쇠 짓 할때는 짠돌이라 부르고..

쫀쫀하게 잘 삐찔때는 쫀돌이라 부릅니다.

물론, 본인은 그리 불리는지 전혀 모르지요.

사람들은 덩치 큰 남편이 호탕하리라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 반대로 소심하고 꼼꼼하고 잘 삐집니다.

 그냥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해주면 허벌레 웃을 심플한 사람인지 알면서도 좀 짜증이 났습니다.

그러곤 에구!.. 그냥 땡큐 한마디하고 말걸 하고 후회도 했지만서도요.


아침에 일어나 전 막 웃었습니다.

항상 남겨져 있던 커피가 오늘은 남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단단히 삐진 모양입니다.

저야 에스프레소를 한잔 뽑아 마시면 될 일이지만 이 삐진 남자를 또 어찌 달래 주어야 할지요?